엄밀히 말하면 '캐즘(Chasm)'이라는 말은 혁신적인 제품이 출연한 이후 얼리 어답터들의 수요를 흡수하다가 더 넓은 범위의 수요층에 어필하지 못하고, 그 수요가 정체하거나 후퇴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리고 자칫하다가는 그 혁신이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의 길로 떨어질 수도 있음을 내포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 세계 전기차 시장에 대해 '캐즘(Chasm)'이라는 말은 엄밀히 말하면 맞지 않다. 하지만 캐즘의 의미를 조금 넓게 확장해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다가 그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되는 흐름의 의미로는 분명 사용할 수 있다.
갑자기 캐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관련 업계에서는 특히나 전기차가 대세가 될지라도 시시각각 그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이 '캐즘'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리튬과 구리 등 전기차에 필수적인 원재료 수급을 하고, 해외 수요처를 찾는 분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던 중 그분이 "전기차 시장은 지금 캐즘이 맞아? 맞다면 언제 벗어날까?"와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이 '캐즘'이라는 단어가 업계에서는 특히나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생각보다 위기의식이 크다고 보였다. 수많은 전망들이 '글로벌' 성장을 말한다 하더라도 각지 시장에 따라 이 단어가 다가가는 의미의 차이는 천지차이인 것도.
현재 점점 선명해지는 것은 지금 중국 시장과 전기차 전환이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로 완성되어 가는 노르웨이를 비롯한 일부 유럽 시장을 바라보고 "(시장에서 바라보는 의미의) 캐즘이 아니다"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품의 원재료를 수급하는 1차적인 현장에서 느끼는, 하루가 다른 수요의 변화는 지금 시장이 얼마나 위태로운 길을 걷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도 하다.
예를 들어 광산 투자와 오프테이크를 받으려는 이들은 물론 미래 전망이 누구보다 중요하고, 그 산정 가치에 따라 최소 수백만~수천만 달러와 본인들의 자리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그 미래 가격을 찍고(온갖 정보를 모아 정밀히 계산하고) 물량을 얼마큼 확보를 하겠다는 실무적인 예측과 추정이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소용 없어지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와중에 미국에서 야심 차게 출발한 IRA 투자 건들이 하나씩 좌초되거나 연기되는 실제의 상황은 불안감을 더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시장은 '캐즘'에 대한 불안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유수의 컨설팅펌이나 러서치펌의 자료와 분석가들이 아니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시장 참여자들이 '캐즘'이 왔다고 가정을 하고 보수적으로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음을 보면 더욱 그렇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시장 참여자들 모두는 어떤 선언을 할 수 있는 일론 머스크가 아니고, 모든 기업이 시장이 가라앉아도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강력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지 않다. 특히나 강력한 단어가 관계자들의 심리에 꽂히고, 그를 뒷받침하는 근거들도 속속 나오다 보면(물론 반대 근거가 더 많다), 위축이 될 수밖에 없다.
'캐즘'이라는 단어를 작년에 처음 한국에 소개한 곳 중 하나는 커피팟이다. 미국 악시오스의 관련 아티클을 인용하며 처음 소개했고, '캐즘이 아닐까?'라는 의문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후 유튜브 슈카에서 비슷한 흐름의 이야기가 1~2주 후에 나왔고, 그 이후에는 주요 방송사를 비롯한 주류 미디어가 모두 '캐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사실상 시장의 공식적인 용어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또) 엄밀히 말하면 특정 시장에서 높은 가격과 인프라 부족으로 수요가 둔화되는 '캐즘'이 감지되었다는 이야기였는데, 시장의 각종 자잘한 문제들이 캐즘의 이유라는 자잘한 분석들이 이어지기도 했다. 단어가 워낙 찰지게 꽂히기도 했고, 맞물려 가는 여러 상황을 대입할 수 있다 보니 이야기들이 그렇게 만들어진 듯도 하다.
어쨌든 전기차 시장의 미래 전망은 전혀 불투명하지 않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의 성장에 대한 99%의 확신보다 큰 1%라는 불안감이 도사리고도 있는 듯하다.